선진화法의 덫… 국정 발목잡기로 악용

계속되는 국회 파행에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선진화법의 개정 역시 선진화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여야 합의, 즉 야당의 동의 없이 법안 개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선진화법이 만들어질 때에도 이를 강하게 반대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법제처,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법안 개정 관련 연구를 위탁하는 등 선진화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흔히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조항은 국회법 85조와 86조다. 이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여야 간 쟁점 법안 처리에 있어서 재적의원 5분의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반수 이상을 차지한 다수당이라도 5분의3 이상의 의석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떤 법안도 날치기 통과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당의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한 소수당 측의 무력시위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모든 법안 처리에 여야 합의가 전제되다 보니 자칫 ‘소수 독재’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특별법과 다른 법안들의 연계 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정기국회 의사 일정조차 합의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선진화법의 ‘악용 사례’라고 판단하고 있다. 선진화법이 국정 발목잡기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 국회의장은 1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진화법의 개정은 직권상정을 살리는 게 아니라 다수결로 돌리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자는 것”이라며 “임기 내에 개정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진화법의 개정 역시 선진화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는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위헌 소송을 검토하는 것도 입법부 내에서 처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한 번 쏟은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선진화법 딜레마에 막혀버린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여권에서는 여야가 교체될 수도 있는 20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 선진화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놓는 방안, 장기적으로 야당 의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방안 등이 그나마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